종가 정보

전통문화의 어제와 오늘을 이어가면서 내일을 준비하는 종가

종가 정보

  • 한산이씨 음애공종가
  • 음애 이자李耔, 1480년(성종 11)~1533년(중종 28)
    • 지역용인시
    • 제례일12월

지리적·생태적
특징

용인龍仁은 조선 태종 때 고려시대 명칭이던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을 합하여 생겨난 이름이다.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용인의 땅은 기름지고 메마른 것이 반반이며 논은 면적의 8분의 3이 좀 넘는다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오곡이 주요 생산물로 재배되었으며 싸리버섯, 지초 등은 공물로 바쳐졌다. 한산이씨의 본관지인 충남 서천군 한산면은 한산이씨 호장공파의 이윤경 자손들이 800여 년 전통을 이어오며 한산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곳은 한산모시의 생산지이자 백제유민의 토속주로 알려져 있는 소곡주가 생산되고 있다. 이 술은 근래 음애공 불천위제례의 제주로 사용되고 있다. 지곡동은 음애공 후손들이 거주해온 마을로 토박이 주민들은 지금도 농사를 짓고 있다. 과거에는 조용한 농촌이었으나 지금은 외지인들이 들어와서 창고, 공장, 식당 등을 하여 전원적인 경관은 많이 사라졌다. 지곡리의 줄타기(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와 동동주인 부의주浮蟻酒(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호)는 무형문화재로 알려져 있다.

불천위 인물

이자李耔(1480∼1533)는 이색李穡의 5대손, 양도공 이숙무李叔畝의 3대손이며 대사간 이예견李禮堅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1504년(연산군 10)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천추사의 서장관으로 중국에 다녀온 뒤 이조좌랑으로 승진했으나 연산군의 난정에 환멸을 느껴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자청하여 의성현령으로 나갔다. 중종반정 후 발탁되어 홍문관 수찬과 교리 등을 지내다가 1510년(중종 5) 포은 정몽주와 야은 길재의 사당을 세웠다. 그 해 부친상으로 사직하고 용인 부친의 묘 옆에 사암을 지었으며 1513년(중종 8) 복직했으나 이듬해 어머니의 상으로 사직했다. 그는 왕족인 주계군 이심원의 문하에서 수업을 했고, 사림파의 한 사람이었으나 성품이 온유하고 교제가 넓어 남곤, 김안로 등의 훈구세력과도 원만하게 지냈다. 조광조, 김정金淨 등의 신진사류들과 일파를 이루었으나 그들의 급진적 개혁정책을 완화하려는 노력도 했다. 1516년(중종 11) 조광조, 조광보, 조광좌와 함께 용인에 사은정四隱亭을 지었다. 특히 이웃마을 한양조씨 양경공의 4대손인 회곡 조광좌(1483~1521)와는 형제같이 여겼으며, 현재도 음애공의 후손들은 한양조씨 회곡 집안과는 중매혼을 하지 않는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 이후 용인의 사암에 내려와 살았다가 충주로 이거하여 이연경李延慶, 김세필金世弼, 이약빙李若氷, 허초許礎 등과 교유하며 강학했다. 이자는 『주자가례』를 독신했으며 자손들에게 그 실천을 유언했다. 『기묘명현록』에 올랐고, 충주의 팔봉서원에 배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음애일기』와 시문집인 『음애집』이 있다. 그는 충주에서 사망했으며 종계변무에 대한 공으로 광국원종 1등 공신을 받았으며, 1682년(숙종 8) 불천지위로 제향 되었다. 시호는 문의文懿이다.

내림 음식

제의 장소

  • 1. 고택전경
    1. 고택전경
  • 2. 고택
    2. 고택
  • 3. 사당
    3. 사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