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 정보

전통문화의 어제와 오늘을 이어가면서 내일을 준비하는 종가

종가 정보

  • 경주정씨 제안공종가
  • 정효상鄭孝常, 1432년(세종 14)~1481년(성종 12)
    • 지역파주시
    • 제례일1월

지리적·생태적
특징

파주는 북에서 흘러내려 오는 임진강이 한강과 만나 서해로 흘러가는 하구에 위치한다. 한양 인접지로서 예로부터 임진강을 따라 유통이 발달하고 고랑포와 문산포는 물류 집산지로 유명했고 임진강에는 참개와 황복어 등 민물 어류가 풍부했다. 또한 장단콩이 유명하여 두부요리가 발달했다. 제사에도 두부는 직접 갈아서 올리며 이 지방에서는 콩을 갈아서 두부, 콩국수, 순두부 등을 해 먹는다. 신광촌 앞으로는 금릉천이 흐르고 도시개발 전에는 넓은 전답이 펼쳐져 있었다. 정효상의 큰아들의 후손들은 파주에 살면서 신광촌新光村(금릉동 산191-8)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다. 한국전쟁으로 건물이 전소되자 1955년 작은집이 있는 전북 순창군 동계면 수장리 상외령 마을로 묘우를 옮겼으며 1957년 9월 28일 부조묘를 낙성하고 신주를 봉안했다. 2013년 10월 종손의 요청으로 다시 파주시 금릉동 산191-8번지에 사당을 짓고 신주를 이안했으며 순창의 부조묘는 영정각으로 개칭하여 영정을 모시고 있다. 50여 년간 순창에서 제를 지내다 보니 그쪽 지역의 진설방식과 제물이 들어가게 되었다.

불천위 인물

증조부는 정인검鄭仁儉, 조부는 정염鄭濂이고, 부친은 증좌찬성 정지년鄭知年이다. 1451년(문종 1) 생원시에 합격한 후 1454(단종 2)에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집현전 부수찬, 지제교, 부교리를 지내고 1455년(세조 1)에 원종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이듬해 세자시강원의 사경에 올랐으며 1459년(세조 5) 6월 승문원부교리로 임명되어 학문에 전념하게 하는 한관독서의 혜택을 받았다. 1466년(세조 12) 문과 중시에 급제했으며 1468년(예종 1)에 동부승지에 오르고 남이南怡의 옥사를 다스리는 데 공을 세워 익대공신 3등에 책록되고 계림군에 봉해졌다. 1471년(성종 2) 성종의 즉위를 도운 공으로 좌리공신 3등에 책록되고 정헌대부가 되었다. 1472년 경상도 관찰사, 1474년 공조판서를 거쳐 이조판서에 올랐으며 1476년 진하사進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1477년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정효상은 훈구파라고 할 수 있는 정인지鄭麟趾, 신숙주申叔舟, 최항崔恒 등과 교류했으며 이들과 함께 공신이 되었으나 사림과도 친분이 있었다. 정효상은 중도적 성향을 띠었으며 스승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강연을 잘하여 강의를 많이 나갔으며 예종과 성종이 세자로 있을 때 학문을 가르쳤다. 정효상은 오위도총관으로 있을 때 김길통金吉通의 묘비를 지은 적도 있다. 1481년(성종 12)에 세상을 떠나자 성종은 파주에 사패지를 내리고 제안齊安이라는 시호와 부조지전을 내렸다. 정효상은 아들 형제를 두었는데 장남의 후손들이 경기도 파주에 살면서 신광촌新光村(현재 파주시 금릉동 산191-8)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모셨다. 하지만 한국전쟁으로 사당이 전소되고 제례를 지낼 수 없게 되어 1955년 차남의 후손이 있는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수장리 상외령 마을에 부조묘를 신축하고 1957년에 준공하여 신주를 모셨다. 이후 2013년 파주시 원래 위치에 사당을 짓고 신주를 모셔 왔다.

내림 음식

제의 장소

  • 1. 부조묘
    1. 부조묘
  • 2. 부조묘 현판
    2. 부조묘 현판
  • 3. 재실
    3. 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