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 정보

전통문화의 어제와 오늘을 이어가면서 내일을 준비하는 종가

종가 정보

  • 죽산안씨 양효공종가
  • 안맹담安孟聃, 1415년(태종 15)~1462년(세조 8)
    • 지역양주시
    • 제례일12월

지리적·생태적
특징

양주시는 조선시대에 양주도호부, 양주군으로 불리다가 1963년 의정부읍이, 1980년 2개읍 6개면이 남양주군으로, 1981년 동두천읍이 시에서 분리되었다. 2003년 양주시로 승격되었으며 지세는 추가령구조곡이 지나고 중앙부가 평탄하며 동쪽과 서쪽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경지면적은 밭이 논보다 다소 많다. 서울과 근접하여 벼농사 외에도 채소류와 인삼, 들깨, 참깨 등의 특용작물이 재배되며 한우, 젖소, 돼지, 닭 등 가축사육도 많이 한다. 양효공 종택이 있는 송낭리 면우지(‘메루지’로 와전) 마을은 ‘면우’라는 성함을 가진 종손의 7대조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비롯되었다. 종택에서는 벼농사와 밤, 콩, 목화, 무, 배추, 고추 등을 직접 재배하여 제물을 올릴 때도 직접 수확한 농산물을 대부분 사용한다.

불천위 인물

안맹담의 증조부 안극인安克仁은 고려조에서 대제학을 역임했고 안극인의 딸은 공민왕의 비인 정비定妃이다. 조부 안숙로安淑老는 조선조에서 평양 부윤, 부친 안망지安望之는 함흥 부윤을 역임했다. 안맹담의 처는 세종과 소헌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딸 정의공주貞懿公主이다. 안맹담은 1415년(태종 15)에 태어났으며 1428년(세종 10) 14세에 부마가 되어 죽성군竹城君에 봉해지고 숭정대부가 되었다. 1431년(세종 13)에 연창군에 봉해지고 1442년(세종 24)에 숭록대부로 봉해지고 1450년에 부마의 칭호를 위尉라고 하여 연창위延昌尉가 되었다.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 데 있어 공을 세워 수록대부에 올랐으며 좌익 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다. 그는 초서와 활쏘기, 말타기를 잘했으며, 음률音律에도 해박하고 남에게 약방을 지어줄 정도로 약물藥物에도 지식이 있어 사람들에게 베풀었다. 그는 겸손했으며 길을 다닐 때도 보좌하는 하인을 두지 않고 다녔다. 1462년(세조 8)에 48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양주 도봉산 해촌동海村洞 묘원에 묻혔으며 불천위로 봉사되었다. 세조는 그가 타계하자 양효良孝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쌀과 콩 90석, 정포 70필, 종이 2백 권을 부의했다. 양良은 온량 온량하고 즐기기를 좋아한다는 의미이며 효孝는 부모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다. 1733년(영조 9) 동지동령 안구安球 등은 종친부에 단자를 바치고 선조 연창위는 세종조 공주의 부마인데 장파長波가 4대에 세 번이나 끊어지니 지손을 가려서 봉사奉祀하게 하자고 아뢰니 영조는 후사를 세우도록 명했다. 정의공주는 1428년(세종 10)에 왕녀로 책봉되었으며 안맹담에게 시집가서 1477년(성종 8)에 작고했다. 그 해 공주의 원찰로 현재 도선사로 추정되는 도성암道成庵이 창건되었다. 정의공주는 문종의 동생이자 세조의 누이가 되며 성품이 총명하고 지혜로워 세종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세종은 정의공주가 시집을 간 후에도 수차례 집을 방문할 정도로 그녀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 정의공주는 한글 창제에도 도움을 주었다는 일설이 있다. 정의공주와 양효공은 생전에 금슬이 좋았으며 두 사람 사이에서 4남 2녀가 태어났는데 아들의 이름은 세종이 친히 지어주었다. 이들의 이름은 여달如獺, 온천溫泉, 상계桑鷄, 빈세貧世이다.

내림 음식

제의 장소

  • 1. 사우
    1. 사우
  • 2. 종택
    2. 종택